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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부 기자로 다시 시작해야 하나
    기자, 그리고 에디터 2015. 4. 19. 20:07

    새로운 직장도 잡은 지 9개월. 보통 직장인에게 3, 6, 9개월마다 슬럼프가 온다는 법칙이 있는데, 마침 그 시기인 것 같다. 9개월로 접어드는 지금 다시금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3개월 차, 6개월 차에는 큰 고민 없이 무탈하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제 곧 이곳에서 1년 차를 맞이하는 시점이 다가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정체성, 경쟁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즉, 일을 왜 해야 하는지 그 대의명분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만일 내가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해봤으면 지금보다는 좀 달랐을까? 그래도 테크를 기반으로 독자에게 정보를 주는 일도 나름대로 가치있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열심히 기술만 파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해당 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사회와 경제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정치 판도도 바꾸는 것이라면, 기술, 즉 지극히 매우 작은 부분에만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닐까? 등 이러한 의구심이 새록새록 생겨난다.

    즉, 어찌 보면 방향성의 고민인 셈이다. 앞으로 남은 1년 안에 경쟁력 있는 파트를 찾지 못하게 될 경우에는 승부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기도 한다.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에 강점이 있는지,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은 부수적이다. 어떤 카드를 내세울 것이냐,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기자라는 역량을 내세우기에는 사회부 경험이 없는 것이 내심 신경 쓰인다. 사회부. 언론의 꽃이라고 불리는 사회부에서 한 번 굴러본 경험이 있다면, 깡다구 하나는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 이제 6년 차인 오빠가 1년도 넘게 내게 “너 인턴으로 있었을 때 경찰서를 한 달 간 돌렸어야 했는데”라며 농담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다. 피곤하고 고달픈 일이었겠지만은, 그래도 기자와 언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조금 더 빨리 정의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들.

    그렇다고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원하는 아이템을 선택하여 취재(정보 리서치, 업체에 직업 확인 등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일련의 활동을 취재라고 한다. 실제로 리서치한다, 조사한다는 말보다는 아무래도 취재한다라는 말이 조금 더 익숙하다)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있고, 원하는 영어 실력도 늘릴 수 있다. 게다가 외국계 회사다 보니 최소한의 성과 요건만 만족하면 그 가운데서 월차를 능동적으로 쓸 수 있는 등 복지 제도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도 업무 강도에 있어서 일간지보다 가볍다.

    결국은 삶을 편안하게 살면서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낼 것이냐, 아니면 삶이 조금 고단하고 가족,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대의명분을 위해, 정의를 위해 일할 것이냐 그 사이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다.

    국내 취재 기자의 삶은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아이템과 트렌드를 쫓기 위해 다른 매체는 어떻게 기사가 나왔는지도 체크하면서, 관계자들 만나서 취재도 해야 하고, 기획기사도 쓰면서도 취재원과의 관계도 잘 다져놓아야 한다.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1주일에 최소 6일을 한다. 물론, 1주일 7일을 일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사실 나의 경우에는 전문가나 업체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보고서를 찾아보거나 책을 보는 등 자료에 기반한 취재를 조금 더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기술 베이스의 전공을 갖췄다보니 기술 메커니즘을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어떤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깊이 있는 그 어떤 질문을 유도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기자가 모든 것을 다 알면 기자를 하고 있겠느냐는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기는 한데, 그래도 전문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준 전문가수준으로 지식을 쌓아놓은 상태에서 진정성있게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작업 방식이, 내가 추구하는 정보 콘텐츠가 과연 기사로서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를 잘 모르겠다. 생산성, 즉 사람들에게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내 경쟁력과는 일치한다고는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현재를 살고 있으나 가치는 미래지향적이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이로써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느냐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기사의 경우 현재라는 팩트를 근거로 미래를 예측한다. 그런데 이 방향으로의 기사를 만드는 데 있어서 아직 100%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현재 생체인식, 인공지능 등의 차세대 기술에 관심을 두고 해당 기술의 구현 방식이나 각 기업에서 활용하고 있는 형태 등을 취재하고 있는데, 지금 내 관심사는 바로 거기까지라는 것이 한계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사회경제가 어떻게 변할지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예측하리라는 생각. 그런데 경쟁력을 갖추려고 한다면 기술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멈추면 안될 것 같다는 게 바로 핵심이다. 기술, 산업, 업계, 경제, 정치를 맞물려서 이해하는 것. 그것이 곧 내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임을 확고하게 깨달았다.

    물론 늘 이런 사명감을 지니고 살 수는 없다. 기자도 에디터도 사람인지라 늘 해야 하는 업무만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압박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이처럼 블로그라는 개인화된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로서의 사명, 유용한 정보를 공유해야한다는 부담감을 한결 내려놓고,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 듣고, 그래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관철하는 활동. 그리고 비슷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어떤식으로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 그런 것들.

    이런저런 생각에, 그래서 오빠 말대로 정말 사회부부터 굴러서 깡다구를 길러야할 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 어쨌든 나는 내 방식대로의 길을 가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왠지 사회부 기자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충만했는데, 본 글을 이어 쓰는 시점에서 다시한 번 생각이 바뀐 것이다. 미디어오늘의 언론사 병영문화, ‘사쓰마와리’ 가 저널리즘 망친다라는 글을 보고 다시 본질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감, 나와는 관련이 없더라고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는 불온함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들. 그리고 그것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곳은 바로 사회부. 하지만 그런 이상적인 언론관을 관철하기에는 한국 언론이 보여주는 행태가 사실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일개 기자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데스크에 앉아 기사를 만지는 국장이나 팀장급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지금의 언론은 내가 원하는 수준의 정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 것을 참아내면서 과연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자신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도전을 지금도 주저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순간 일렁한 감정에 잠시 휘청거린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빠 말대로 취재 기반으로 승부를 거는 기자도 있지만, 나처럼 자료 기반의 정보를 기반으로 기술에 대한 이해도로 승부를 걸 수도 있고, 또는 외신에 기반한 기사를 쓰는 사람도 있는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같은 직장 선배도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그중에서도 자신이 강점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을 토대로 기자가 되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줬다.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상태에서도 이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는 아마도 ‘정통성’이 취약하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계속 이렇게 쉽게 살아도 되나 하는 불안감. 그래서 변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기자라면 기자라는 타이틀로 업체를 만다는 것이라면 취재를 기반으로 기사를 써나가는 기술을 늘려나가는 것에 주력하기로. 에디터와 기자의 모든 관점을 요구하는데, 사실 그것은 회사의 관점에서 주장하는 것이지 기자의 역량을 키워주기 위해 요구하는 역량이 아니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다 보면 왠지 나는 없을 것 같다. 이대로는 경쟁력도 없고, 결국 이 회사에만 전전하다가 결혼하고 애 낳고 그냥 그렇게 살 것 같은 느낌이다. 더는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다. 이 불안감을 타개하려면, 그래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시키지 않아도 내가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 그것이 바로 취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다. 특히 앞서 말한 대로 현재 관심 있는 미래의 기술에 관한 외신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 외신 소식을 익히고, 월별 준비하는 보고서도 바로 이 기술과 연계에서 작업하 것. 힘들어도, 여유가 없어도 그것이 맞는 길이라는 생각했다. 더 이상 회사가 원하는대로만 일하면 안되겠구나.

    또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사회부 기자를 해보면 달라질 수 있을까. 이 회사로 옮겼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이 회사를 가면 외국어도 잘하게 되고, 외신 소식도 더 많이 접하게 될 거라는 생각. 그러나 내가 스스로 그 길을 찾아야 한다. 사회부 기자도 똑같을 터. 여기서도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는데 사회부를 가더라도 달라질까. 결국은 자리 탓만 하고 있었던 셈이다.

    자리 탓을 하느라 내가 뭘 해야 하는지도 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어리석음. 아마도 이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본 글을 3개월 마다 다시 봐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내 목적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삶의 가치관을 잠시 내려두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봐야겠다. 물론 회사는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고, 그런 회사는 영리를 추구하기 위해 나를 고용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미디어라는 특수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라면 나를 기자로서 존중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것. 큰 것을 깨달은 바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없으면, 만일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중동이나 지상파 방송 기자가 된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테니까.

    IT업계에서 제대로 된 기사를 쓰는 곳을 목표로 열심히 해야겠다. 그리고 각계 전문가의 도움으로 보다 더 나은 기사를 쓰는 것. 그것이 목표다. 글쓰는 일을 선택하길 참으로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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